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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2라운드가 열린 미 샌디에이고 팻코파크에 걸린 태극기(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3월 3일 일본 도쿄돔. 전날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친선경기에서 4-2로 이긴 한국야구 대표팀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만났다. 5일부터 시작되는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라운드를 준비하는 대표팀으로선 이날 경기가 마지막 평가전이었다.

 

 그런 까닭일까. 선수단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결의에 차 있었다. 지난해 일본시리즈 챔피언 세이부를 꺾은 뒤인지라, 선수들의 몸짓도 무척 가벼워보였다.

한국은 마지막 평가전을 맞아 새로운 타순을 시험했다. 이대호를 1루수 겸 4번으로 김태균을 지명타자 5번으로 세웠다.1번 타자엔 이택근, 2번은 고영민, 중심 타선이 시작되는 3번은 이진영에게 맡겼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요미우리 1.5군 투수진에게 꽁꽁 막혀 단 5안타만을 기록했을 뿐 인상적인 경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이날 경기에서 대표팀은 요미우리에 0-3으로 졌다.

마지막 평가전에서 완패한 대표팀을 야구 관계자들과 언론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김인식 대표팀 감독의 표정에서 동요하는 기색이란 발견할 수 없었다. 요미우리 이하라 하루키 감독대행의 "한국 타자들이 몸쪽 공에 약한 것 같다"란 경기평을 듣고도 "몸쪽 공에 야박한 메이저리그 심판들이 주심을 보는 WBC 본경기에선 일본 투수들이 몸쪽으로 승부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며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는 눈치였다.

대신 김 감독은 이날 1이닝 동안 홈런 포함 2피안타 1실점으로 부진한 황두성을 두고 장고에 들어갔다. 황두성은 하와이 대표팀 합숙훈련 때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황두성만이 아니었다. 윤석민을 제외한 거의 모든 투수들이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해 코칭스태프의 애간장을 태웠다. 하지만 '믿음의 야구'의 대명사인 김 감독이 대회를 이틀 앞두고 선수를 교체하리라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3월 6일 한국과 타이완전을 앞두고 김인식 감독(사진 좌)과 이날 시구자로 나서는 장훈 선생(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환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장훈 선생은 한국이 WBC 결승전에 오른 뒤 일본의 한 TV에 나와 "다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난 김인식 감독이라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설마'했던 칼을 빼든 건 다음날이었다. 김 감독은 황두성을 대표팀에서 제외하고 두산 임태훈을 불러들였다. 의외였다. 이때 대표팀의 한 코치가 한 말은 이랬다.

"김 감독의 '믿음의 야구'는 무한정으로 선수를 신뢰하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야구'에는 원칙이 있다. 되는 선수와 안 되는 선수를 객관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안 되는 선수를 무한정 밀어주는 건 '믿음의 야구'가 아니라 '감()의 야구'다. 김 감독을 처음 모시지만 '아, 이분이 주관적 감에만 의존하는 분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아라운드, '지옥과 천국 사이'에서도 의연했던 김 감독

3월 6일 타이완과의 아시아라운드 1차전에서 9-0으로 이긴 한국은 다음날 일본과 승자전에서 맞붙었다. 양팀 선발투수 김광현과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고려할 때 치열한 접전이 예상됐다.

그러나 결과는 1회초부터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일본전 2경기에 나와 13⅓이닝을 3실점으로 막으며 '일본킬러'로 부상한 김광현은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선두타자 스즈키 이치로에게 우전안타를 맞은 뒤 1회 3실점하는 불안한 출발을 했다.

한국의 반격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1회말 2사 3루에서 4번 타자 김태균이 일본 선발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4구째를 통타해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비거리 140m짜리 초대형 2점 홈런을 터트리며 추격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김광현이 2회에 다시 밀어내기 볼넷으로 추가 실점한 뒤 전날 중국전에서 홈런을 때렸던 4번 무라타 슈이치에게 3점 홈런을 얻어맞으며 점수차가 6점으로 벌어졌다.

경기초반 2-8로 뒤진 한국은 급격히 하향세를 탔다. 4회와 5회 각각 1, 2점씩 추가실점하고 6회초 조지마 겐지에게 좌월 2점 홈런을 맞으며 점수 차가 10점 이상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한국은 일본에 2-14 7회 콜드게임패했다.

경기가 끝난 뒤 도쿄돔 지하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김 감독이 나타났을 때 어떤 기자도 쉽게 손을 들어 질문을 하지 못했다. 충격의 콜드게임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난감했던 건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 감독의 얼굴은 몹시 상기돼 있었고 한쪽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용기를 내 한 기자가 질문했다. "오늘의 패인을 무엇으로 보는가."

상기된 표정과 달리 김 감독의 답변은 명쾌했다.

"일본엔 메이저리거가 5명이나 포함돼 있다. 선수들의 객관적인 수준이 한국보다 높다. 더구나 김광현의 공격적인 투구 패턴을 일본이 잘 분석했다. 그러나 김광현의 공이 한 가운데로 몰리며 난타당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라 생각한다."

 

   

다음 질문은 콜드게임과 관한 것이었다. "김광현을 2회 교체했다면 콜드게임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김 감독도 그 점을 후회하고 있을지 몰랐다. 199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 이후 프로선수들이 참가한 A매치에서 한국이 일본에 콜드게임패하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2006년 제 1회 WBC에서 한국을 4강으로 이끌며 '국민 감독'이란 찬사를 받던 김 감독으로선 치욕적인 패배일 수 있었다. 하지만 김 감독에게 진정한 치욕이란 콜드게임패가 아니라 오늘의 패배를 내일의 승리로 대비하지 않는 자세였다.

"오늘 지고 내일 이길 수 있는 게 야구다. 2-14로 지나 0-1로 지나 야구에서 지는 건 매한가지다. 중요한 건 내일 중국과의 패자부활전이나 일본과의 재대결이다. 이를 계산해 투수들을 최대한 아낄 필요가 있었다."

중국과 타이완전의 패자부활전을 하일성 KBO사무총장(사진 우측)과 함께 관전하는 김인식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3월 8일 중국과의 패자부활전에서 승리한 한국은 2라운드행을 최종 확정지었다. 그러나 2라운드가 열리는 미국행 비행기에 타기 전 할 일이 있었다. 일본에게 당한 콜드게임패를 1, 2위 순위결정전에서 되갚는 것이었다.

이때 김 감독이 내민 카드가 있었다. 봉중근이었다. 봉중근은 며칠 전부터 김 감독에게 선발등판을 자청했던 터였다. 잘 던지면 '영웅' 못 던지면 '역적'이 되는 한일전에서 봉중근의 결정은 쉽지 않은 것이었다.

김 감독의 믿음에 봉중근은 실력으로 화답했다. 봉중근은 과거 메이저리그 출신답게 메이저리거가 4명이나 포함된 일본 타선에 기죽지 않고 경기 내내 자신 있는 투구를 펼쳤다. 이윽고 5⅓이닝 총 69구를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왔을 때 전광판에는 3피안타, 2탈삼진으로 무실점을 기록한 그의 성적이 찍혔다.

2008시즌 일본프로야구 최고투수에게 주는 '사와무라상'을 수상한 일본선발 이와쿠마 히사시도 5⅓이닝 동안 안타를 단 2개만 허용하고, 볼넷 3개와 삼진 5개로 1실점하는 에이스다운 활약을 보였지만 봉중근에겐 한 수 뒤였다.

이틀 전 콜드게임패를 당한 뒤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던 김 감독이 이번엔 승장의 입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김 감독의 소감은 지나칠 정도로 평범했고 겸손했다.

김 감독은 시종일관 "봉중근과 김태균 등 선수들이 잘해 승리할 수 있었다"며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고 패자인 일본에 대해서도 "투수들이 좋은 투구를 했지만 다소 단조로운 패턴이라 한국 타자들에게 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다"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다.

아시아라운드에서 김 감독의 인터뷰를 줄곧 지켜본 일본야구주간지 '슈칸베이스보루' 시야 히로유키 기자는 "한국 선수들의 능력보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김 감독의 표정과 말투가 더 무섭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시야 기자는 "상대를 알고 내팀을 아는 건 1류 감독, 상대를 아는데 내팀을 알지 못하면 2류 감독, 상대를 알지 못하고 내팀도 알지 못하는 감독은 3류 감독,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4류 감독"이라는 일본야구의 오래된 격언을 꺼내며 "상대와 내팀 모두에게 너그럽고 겸손한 감독은 급수를 따질 수 없는 감독"이라고 말했다. 왜냐? 너그러움과 겸손이야말로 승자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김 감독은 이미 상대와 내팀을 알고 있는 1류 감독에 승자의 미덕까지 갖춘 감독이란 뜻이다.

3월 9일 한국과 일본의 1, 2위 순위결정전. 매진행렬을 이룬 도쿄돔에서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1-0 승리를 거뒀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매니저'로서의 능력과 '헤드 코치'로서의 능력

아시아라운드를 통과한 한국의 본선 2라운드 첫 상대는 멕시코였다. 3월 1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샌디에이고 팻코 파크에서 벌어진 멕시코전에서 한국은 이범호, 김태균, 고영민의 홈런포 3개와 투수들의 완벽한 계투를 앞세워 8-2로 이겼다.

이날 멕시코전은 '매니저'로서의 김 감독의 탁월한 능력만큼이나 '헤드 코치'로서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지 잘 보여준 경기였다.

김 감독은 선발 류현진이 2회 2실점 뒤 3회초 2사 1, 2루 위기에 빠지자 정현욱을 마운드에 올렸다. 류현진의 이름값을 고려할 때 다소 이른 선택일 수 있었다. 그러나 김 감독의 선택은 정확히 적중했다. 갑작스런 등판에도 불구하고 정현욱은 시속 149㎞의 속구와 시속 130km 커브를 요령껏 섞어 던지며 타자의 눈을 교란시켰다. 정현욱이 2⅔이닝 동안 멕시코 타자들을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지 못했다면 한국의 승리는 자신할 수 없었다.

이날 경기에서 김 감독은 용병술뿐만 아니라 승부의 도처에서 슬래시 번트 (번트에서 타격으로 전환), 보내기 번트, 더블 스틸 등 다양한 작전으로 멕시코 선수들의 혼을 빼놓는데도 성공했다.

비니 카스티야 멕시코 대표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WBC 기간 중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다음날 쿠바와의 패자부활전에서 카스티야 감독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카스티야 감독은 멕시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의 경기가 눈 깜짝할 새 끝나 무엇을 이야기해야할 지 준비하지 못했다"며 "한국야구는 지금까지 대한 적이 없는 새로운 야구"라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무엇이 그토록 새로운 야구였는가"란 질문에는 "정확히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심하게 놀림을 당한 기분"이라며 "그들의 벤치는 계속 성공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는 말로 벤치싸움에서 완패했음을 시인했다.

3월 16일 멕시코는 현란한 작전과 선수들의 뛰어난 작전수행능력이 돋보인 한국을 맞아 혼쭐이 났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멕시코전에서 승리한 한국은 18일 쿠바에 이긴 일본과 승자전을 치렀다. 이날 경기 전 김 감독은 더그아웃 한쪽에 앉아 가만히 양팀 선수들의 훈련장면을 볼 뿐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여느 때와 다른 느낌이었다. 기자들 한편에서 "김 감독이 선수들보다 더 긴장한 것 같다"는 말이 돌았다.

실제로 김 감독의 표정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감독에게도 3번째 한-일전은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김 감독은 경기 예상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이란 말만을 남기고 라커룸으로 사라졌다. 이날 한국은 시속 150km의 강속구와 체인지업을 적절히 섞어 일본타선을 압도한 봉중근의 호투와 1회 제구가 흔들리던 일본선발 다르빗슈 유를 거침없이 몰아붙여 3점을 선취한 타선의 집중력에 힘입어 초반부터 앞서나갔다.

이날 경기의 백미는 4-1로 앞선 8회 2사 1루에서 윤석민의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오른 김광현이었다. 3월 7일 WBC 아시아라운드 한국과의 첫 경기에서 8실점하며 심리적 위기까지 몰렸던 김광현의 등판을 두고 일부 야구 관계자들은 "일본 전력분석팀들에게 단점이 모두 노출된 김광현을 투입하는 건 무리수"라고 입을 모았다.

WBC 2라운드 순위결정전에서 일본에 이긴 뒤 한국 선수들은 마운드 위에 태극기를 꽂았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그러나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김광현은 일본의 강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따지고 보면 김 감독의 김광현 투입은 오가사와라가 좌타자란 점도 고려됐지만 김광현에게 용기를 주고자 하는 배려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게 사실이었다.

김 감독은 입버릇처럼 류현진, 김광현을 가리켜 "한국야구를 최소 10년 동안 이끌 투수들"이라고 표현해왔다. 최소 10년을 이끌 투수들이라면 눈앞의 패배에 연연하지 말고 기회를 계속 제공하며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다.

김 감독은 이날 한국이 4-1로 이겼을 때도 겸손한 자세를 일관되기 유지했다. "일본이 잘 싸웠지만 한국 선수들의 컨디션이 조금 더 좋았을 뿐"이라는 게 김 감독의 주된 승장 인터뷰 내용이었다.

김 감독의 임창용 발언 진위

3월 22일 미 LA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베네수엘라와 준결승에서 10-2로 이긴 한국은 다음날 일본과 대망의 결승전을 치렀다.


한국과 일본의 WBC 결승전 3-3 9회말 2아웃 주자 1, 2루에서 이범호가 다르빗슈를 상대로 동점타를 치는 장면. 순간 다저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한인 교포들은 눈물의 함성을 질렀다(동영상=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이날 승부의 결정적 장면은 3-3 동점이던 연장 10회초 2사 2, 3루 스즈키 이치로의 타석이었다. 당시 9회 등판, 2이닝 동안 40구 이상을 던진 임창용의 구위는 나쁘지 않았다. 임창용의 빠른 공에 이치로는 배트에 정확히 공을 맞추지 못한 채 파울을 연발했다. 제 8구째가 운명을 바꿨다.

임창용이 볼카운트 2스트라이크 2볼에서 던진 승부구가 정확히 이치로의 배트에 맞으며 2타점 적시타를 기록한 것이다. 이 안타로 9회말 극적인 동점을 만들며 기적의 드라마를 쓰려던 한국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경기가 끝난 뒤 김 감독은 "어째서 이치로에게 정면승부를 했느냐"는 외국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이치로를 거르라는 사인을 냈는데 포수는 이를 제대로 인지했지만 투수에겐 잘 전달이 된 것 같지 않다"며 "투수에게 물어보지 않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때만 해도 임창용을 비판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 샌디에이고 팻코파크에서 김인식 감독이 한국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WBC 기간 동안 최소 4개국어 이상이 동시통역됐지만 제대로 된 통역서비스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승전이 끝난 뒤 한 외국기자는 김 감독의 몸이 불편한 사실을 모른 채 "어째서 당신이 직접 마운드로 올라가 투수에게 고의사구를 지시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제대로 통역서비스가 됐다면 김 감독의 임창용 발언은 와전되지 않았을 것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그러나 당시 원활하지 못한 통역시스템으로 외국기자들이 김 감독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연이어 두 번이나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이때 김 감독이 외국기자들을 상대로 보다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치로에게 고의사구를 지시했는데 투수가 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나도 어째서 정면승부를 한 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고 똑같은 질문이 쏟아지자 "그때 정면승부를 한 게 아쉽다"는 말이 더해지며 임창용을 비판하는 것처럼 들리게 됐다. 실제로 한 외국기자는 '한국감독이 화가 났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결승전이 끝난 뒤 선발 봉중근과 김인식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에 응하고 있다(동영상=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김 감독의 인터뷰가 끝난 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임창용이 어째서 정면승부를 했는지 자초지종을 알렸다.

"사인을 못 봤지만 승부하고픈 마음도 있긴 했다. 그러나 볼로 뺀다는 게 가운데로 몰리며 실투가 됐다"는 게 임창용의 속내였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임창용의 정면승부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일화는 이렇다.

임창용의 투구수가 많다고 느낀 김 감독은 이치로 타석 전 투수교체를 고려했다. 양상문 투수코치에게 이 같은 생각을 실제로 밝혔다. 대회 기간 중 투수교체에 있어서 김 감독과 양 코치의 생각은 항상 일치했다. 양 코치는 대회 기간 내내 주력 투수와 비주력 투수의 컨디션 차이가 다소 컸던 한국 투수진을 현명하게 이끌었단 평을 받았다. 그러나 묘하게도 이때만 두 사람의 느낌이 갈렸다. 임창용의 구위가 괜찮다고 판단한 양 코치는 사실 10회 이후도 생각해야만 했다.

"감독님. 믿어보시지요." 양 코치가 건의했고 코치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는 김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 코치와 김 감독의 신뢰 속에 임창용은 지난해부터 결정구로 즐겨 쓰던 포크볼을 이치로에게 던졌다. 좌타자 바깥쪽으로 급격하게 떨어지는 임창용의 포크볼은 유인구로는 최상이었다. 이 유인구로 지난시즌 일본프로야구에서 재미를 톡톡히 봤다. 문제는 포크볼이 손에서 제대로 걸리지 않은 것. 그러니까 임창용이 처음부터 정면승부를 하려던 게 아니라 유인구로 던진 포크볼의 제구가 나빴다는 뜻이다.

LA 다저스의 중남미 스카우트(멕시코 전문) 마이크 브리토는 김인식 감독을 가리켜 "미스테리하지만 위대한 거인"이라고 말했다.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한국팀을 이끈다고 붙인 말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김 감독은 대회 종료 뒤 임창용과 그의 소속팀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정식으로 사과했다. 대표팀 감독이 선수와 소속팀에 사과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김 감독은 자신의 기자회견장에서의 발언을 계속 찜찜해했다. 기자들에게도 "(임)창용이를 비난하지 말아달라"며 각별히 부탁했다.

김 감독은 자신의 자존심보다는 끝까지 선수를 챙겼다. 희생양은 죄가 있어 처형된 게 아니라 처형됐기 때문에 죄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임창용은 한국팀 패배의 희생양으로 떠오를 뻔 했다. 그랬다면 김 감독도 편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김 감독은 모든 결과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임창용에게 쏟아지는 화살을 막아냈다.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믿음의 야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행복한 패자, 김인식

김 감독은 초대 WBC에서 한국을 4강까지 올렸다. 2회 대회에선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어쨌거나 승부의 세계에서 2등은 없으니, 결승에서 일본에 진 김 감독은 패자인지 모른다. 그러나 김 감독을 패자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은 1981년 래리 킹이 진행하는 라디오 쇼에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다저스는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겨루고 있었다. 라소다가 출연하기로 한 그날 마침 LA가 휴스턴에 지고 말았다. 그러나 라소다는 활발하고 열의가 넘치는 태도로 쇼를 이끌었다.

어찌나 라소다의 표정이 신이 나 보였는지 래리 킹이 "어떻게 지고도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라소다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인생에서 최고로 좋은 날은 승리한 팀을 내가 감독할 때이고 진 팀을 감독하는 것은 두 번째로 좋은 날이다."

김 감독은 '행복한 패자'다. 왜냐? 지고도 전국민과 야구팬들에게 감동과 여운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18일간의 WBC 기간 동안 한국민과 야구팬은 '패배'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김인식의 야구를 통해 배웠다.

김 감독의 '위대한 도전'은 WBC를 우승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위대한 도전의 실패는 언제든 용납된다.' 바로 이것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박동희 기자 ? MBC ESPN 프로야구 해설위원, 스포츠춘추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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