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대장님 어서 돌아 오세요~

by drpiggy posted Oct 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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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이라는 것이 있지요.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일 같지만, 많은 숫자를 분석하다가 보면 나름 규칙이 있슴을 알게됩니다. 이러한 확률을 알고, 준비하고 조심하면 그 확률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인간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이러한 확률을 조절해 오면서 발전해 오고 있습니다.


의학도 마찬가지이며, 수술로 발생가능한 합병증의 발생율이 있지만, 이런 발생율을 낮추고자 의사들은 여러가지 수단을 이용하여 연구하고 있습니다.

 

병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같은 지방흡입 수술을 하더라도 병원마다 수술의 합병증 발생을은 차이가 있을 것이며, 그 수술결과의 차이도 정규분포를 이루며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 병원이 얼마나 준비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히말라야 산을 등정하는 것은 여타의 다른 산들을 등산하는 것보다 그 위험성이 높다고 할것입니다. 그 위험에 대비하여 준비하면 또한 위험성을 줄일수 있겠지요.

 

박영석씨는 그러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시간, 날씨, 바람, 눈사태, 기온 같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변수들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체력과 장비를 갖추고  그 어렵다고 하는 희말라야 8000 m 고봉 14개를 전부 다 성공했으니까요.


희말라야 고봉 그것도 8000 m 이상되는 산 하나만을 등정하는 것만으로도 위험도가 높은데, 그것도 연속해서 14번이상이나 성공했다는 것은, 박영석씨의 열정과 노력의 댓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눈사태의 사고로 박영석씨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마음이 마픕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예상치 못한 확률을 100% 이겨 내지 못하겠지만, 그것마저 극복하며 기적적으로 생환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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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대한산악연맹 사고대책위원회가 지난 18일 오전 6시30분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남벽 하단부에서 촬영한 박영석 대장의 등반모습을 공개했다. 대한산악연맹

 

 

산악인 박영석(48) 대장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에서 실종된 지 9일째인 가운데 박 대장의 마지막 등반모습이 공개됐다.

27일 대한산악연맹 사고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베이스캠프 측이 지난 18일 오전 6시30분쯤 촬영한 박 대장의 등반모습 사진을 공개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마지막 사진촬영 당시 박 대장은 신동민(37), 강기석(33) 대원과 안나푸르나 남벽 하단부를 등반 중이었다. 사진에는 신 대원의 뒤를 이어 등반 중인 박 대장이 촬영팀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담겼다.

대책위는 "박 대장 일행에 대한 수색작업이 계속되고 있다"며 "현지 사고대책반은 사고 예측장소로 가장 유력한 지점을 전면 재수색한 뒤 설사면 위주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사고 장소로 예측된 지점은 남벽과 빙하가 맞닿은 곳에 형성된 40m 깊이의 균열의 크레바스. 대책위에 따르면 크레바스 주변 환경은 크고 작은 눈사태가 일어나 수색작업이 어렵다.

 

대책위는 "이 일대는 정오만 넘으면 낙석과 가스 등이 발생해 1일 수색 작업 가능시간이 4시간 미만인 것으로 전해졌다"며 "새로 구조대를 투입해 이 지점을 집중 수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대책위는 지난 26일부터 새로 투입된 고산 등반가 김대수 대장, 김창호 대원 등 구조 전문요원을 포함 총 19명의 구조대를 중심으로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박 대장 일행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6500m지점을 등반 중 지난 18일 오후 7시부터 연락이 두절됐다.

안나푸르나 남벽은 에베레스트 남서벽(8850m), 로체 남벽(8516m)과 함께 히말라야 3대 남벽으로 꼽힌다. 3대 남벽 중에서도 가장 오르기 어려운 코스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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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첫 14좌 완등' 오은선이 실종 박영석 대장에게

[중앙일보] 2005년 국내 산행 중 함께 사진을 찍은 박영석 대장(왼쪽)과 오은선 대장. 지난 18일 박영석(48·골드윈코리아) 대장 일행이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오은선(45·블랙야크) 대장이 편지를 보내왔다. 박 대장(동국대 83학번)과 오 대장(수원대 85학번)은 1997년 파키스탄 가셰르브룸 1·2봉과 마칼루(1998년)·K2(2001년) 원정을 함께했다. 오 대장은 지난해 여성 산악인으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m 14개 봉우리 완등을 선언했다.

형, 은선입니다. 지난주 목요일 고려대 캠퍼스를 걷다가 형의 소식을 처음 접했습니다. 한참이나 휴대폰을 귀에서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답니다. 형이 무슨 사고를 당하다니. 하지만 '아닐 거야, 영석이형은 아닐 거야'란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형은 히말라야 등반 사고를 달고 살았잖아요. 그래도 언제나 떨치고 일어났잖아요. 언젠가 이인정(대한산악연맹) 회장이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그놈은 아무도 못 말린다. 수술하자마자 히말라야에 가는 놈이니까." 이번에도 다들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것 아니냐'고 했다지요. 하지만 형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을 겁니다. 형이 아니면 형의 도전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구조대원이 실종된 박영석 대장 일행을 찾기 위해 지난 23일 실종 지점으로 추정되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남벽 근처 크레바스로 들어가고 있다. [대한산악연맹 제공] 형이랑 처음 히말라야에 갔던 1997년 가셰르브룸 1·2봉 원정이 생각나네요. 그때 형은 정말 산사나이였죠. 사실 나이 차는 얼마 나지 않았지만, 저에게 형은 어려운 사람이었지요. 언제나 과묵하고 술을 좋아한…. 하지만 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후배들에겐 큰 힘이었습니다. 가셰르브룸 1봉 등정을 마치고 캠프로 복귀하자마자 후배들을 이끌고 가셰르브룸 2봉 정상 공격에 나섰죠. 마지막 캠프에서 형을 기다리면서 '며칠 전에 8000m를 올랐는데, 다시 2봉을 할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형은 멋지게 나타나 맨 앞에서 우리를 이끌었죠. 앞장서던 형의 둥그런 어깨는 정말 듬직했습니다.

 그날, 7월 17일 기억나지요? 형을 졸졸 따라가고 있는데 '힘든 사람 손들어 봐?'라는 말에 순진하게도 나 혼자서 손을 들었지요. 그때 '은선이 너 젤 앞으로 나와'. 혼나는 줄 알았지만, 오히려 형은 나를 뒤에 달고 길을 뚫고 갔지요. 덕분에 나는 정상 공격조 중에서 형 다음으로 8000m 정상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김인경이 크레바스에 빠졌을 때도 8000m 봉우리 2개를 연속해 오르고 다리가 완전히 풀린 상태에서도 인경이를 부축하고 내려오던 형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올해 형 나이가 마흔아홉이지요. 고산 등반가로서는 이미 정년퇴직을 할 나이인데. 그럼에도 후배들을 이끌고 일선에 서는 형이 새삼 대단해 보입니다.

 산악인으로서 형은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줬습니다. 등반 방식뿐만 아니라 '산에 가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해야 된다'는 형의 삶도. 형은 산에 가려고 집도 여러 번 잡혔잖아요. 후배들 한데 모아서 아파트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어찌 보면 산 사관학교였던 것 같고.

 지난 18일 이후, 형이 사고를 당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01년 K2 등반 때, 그때도 형은 대원 한 명을 잃고 참 괴로워했지요. 밤새 술을 마시며 울분을 토하던 형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네요. 형 소식을 듣고 난 이후 네팔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네요. 오늘밤 형이 쓴 책을 한번 뒤적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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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과 대면하는 순간, 에너지가 솟구치고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길을 떠난다'.

 저를 포함해 형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형의 그 듬직한 어깨를 한번 더 보여줄 순 없는지요?